“아버지를 사랑합니다.
어쨌든 그는 ‘나의 아버지’이니까요”


‘아버지’라는 이름만 들어도 유난히 가슴이 저릿해지는 사람이 있다.

영화 ‘마이파더’ 이야기의 실제 주인공인 애런 베이츠.(34)


지난 4일부터 한국을 방문 중인 그의 첫인상은 서글서글한 인상의 넉살좋고 유쾌한 사람이었다.


시종일관 가벼운 농담을 던지며 분위기를 밝게 이끌던 그는 ‘아버지’ 이야기가 나올 때면 저절로 애잔해져가는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대학생이 되기 전까지는 나의 정체성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주위엔 모두 백인들뿐이었고, 나만 특별히 다르다는 생각도 별로 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부모님의 테두리를 벗어나 대학에 입학하자 생각이 달라졌죠. 학교에 있던 동양인 동아리가 저에게 모임에 가입하길 권유 하더군요”


한국에서 내내 보육원 생활을 하다가 5살 때 미국으로 입양돼 성장한 그는 그 순간 처음으로 자신이 동양인이라는 사실을 피부로 느꼈다. 그때부터 막연히 품고 있었던 친부모에 대한 그리움과 자신의 뿌리에 대한 호기심이 커져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고 한다.


95년 마침내 그는 군대에 자원했다. 그리고 주둔 지역으로 한국을 선택했다.


“내가 태어난 곳에 대해 알고 싶었어요. 그리고 제 친부모님을 찾고 싶었습니다.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는데 일단 한국에서 자리를 잡고 있어야 부모님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요”



TV에서 방영하는 가족 찾기 프로그램에도 출연하며 그는 백방으로 부모의 행방을 알아보았다. 어머니는 이미 오래 전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하지만 어느 날 기적같이 아버지를 찾았다는 연락이 왔다. 그러나 기대했던 아버지와의 첫 만남은 교도소에서 이루어졌다.


“2000년 7월, 드디어 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전 그저 아버지가 교도소에 계시다는 말만 듣고 친구와 함께 광주로 내려갔죠. 차에서 내리자마자 전 깜짝 놀랐어요. 기자들이 구름떼같이 모여 있더군요. 그 때 처음으로 아버지가 사형수라는 사실을 알았어요”


꿈에 그리던 친아버지가 사형수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는 많이 혼란스러웠다. 한동안 이 상황을 믿기 힘들었다.


“제가 상상했던 아버지와의 만남은 아버지가 저를 데리고 다니시면서 ‘이 곳은 네가 태어난 곳’, ‘여기는 네가 어릴 적 자란 곳’...이라는 설명을 해주고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죠. 아버지와 걷고 싶고, 아버지를 안고 싶고, 만져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차가운 교도소에서 겨우 5분 정도만 함께 할 수 있다는 현실이 화가 났어요”


‘나의 아버지가 대체 왜?’라는 의문은 끝도 없이 점점 그를 괴롭혔다.


하지만 부자지간의 천륜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그는 곧 아무런 조건 없이 사형수 아버지를 그의 ‘진정한 아버지’로 받아들였다.


그는 미국인 양부모와의 사랑과 친아버지와의 사랑을 ‘막대기’에 비유해 설명했다.


“미국 부모님과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많은 일들을 함께 했습니다. 서로 공유할 수 있는 기억들이 많고 충분한 유대감이 형성돼있죠. 마치 막대기를 여러 개 겹쳐놓아 절대 부러뜨릴 수 없는 것 처럼요. 친아버지와는 과거에 교감한 것이 없었기 때문에 부러지지 않을 막대기를 지금도 하나씩 하나씩 만들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아버지를 만나면 만날수록 사랑도 커지는 것을 느낍니다. 그리고 ‘이 분이 정말 나의 아버지구나’라는 느낌이 절실히 들고요”


미소 짓는 그의 얼굴에서 설핏 서글픔이 비친다.



그는 아직도 어릴 적 한국에서의 기억이 생생하다. 한국과 친부모에 대한 그리움은 그의 무의식 속에 늘 잠재돼 있었다.


“항상 비슷한 꿈을 자주 꿨습니다. 그리고 그 곳은 늘 같은 장소였죠.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곳이 제가 어릴 적에 지냈던 보육원이더라고요. 또 이런 것도 있어요. 사람이 인형 탈을 쓰고 나오는 ‘모여라 꿈동산’ 같은 어린이 프로그램도 꿈에 자주 나왔어요. 그저 단순히 꿈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한국에서의 기억들이었어요. 그리고 보육원에 있을 때 우리를 돌봐주던 ‘이모’라는 사람들이 세수하면서 ‘푸~’하고 소리를 내던 것도 생생하게 기억나요. 미국에 있을 때 저도 모르게 한동안 그걸 따라하기도 했죠”


그는 본인도 의식하지 못한 채 알 수 없는 그의 ‘뿌리’를 늘 그리워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의 ‘뿌리 찾기’는 애런 혼자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양부모의 적극적인 지원, 그리고 둘도 없는 친구 김소영 씨의 도움이 컸다고 그는 감사의 말을 전했다.


김소영 씨는 주한 미군 시절 애런 베이츠의 룸메이트로 그가 친아버지를 찾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영화 상에서 배우 김인권이 맡은 역할의 실제 모델이다. 그는 아버지의 편지를 번역해주는 등, 그와 아버지 사이의 언어의 장벽을 넘게 해 준 메신저 역할을 했다.


“소영이가 제 인생에서 어떤 의미인지 한마디로 표현하기는 힘들어요. 정말 이상적인 친구라고 할까요? 그를 만났다는 게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평생 신뢰할 수 있는 그런 친구입니다”


이 날도 인터뷰 통역을 위해 함께 자리한 김소영 씨는 애런의 칭찬에 쑥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싫지는 않은 듯 “진심이냐”고 웃으며 되묻는다.



지난 4일, 애런 베이츠는 양부모님, 친구 김소영 씨와 함께 영화 ‘마이파더’ 시사회를 관람하고 자신을 연기한 배우 다니엘 헤니도 직접 만나보았다.


그는 영화가 끝난 후 양부모님, 김소영 씨와 함께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마지막 면회 장면을 봤을 때 저도 모르게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습니다. 제가 느꼈던 감정이 고스란히 전달되었더군요”


본인을 연기한 다니엘 헤니에 대해서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정말 좋았습니다. 그 당시 저의 감정을 되살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지 짐작할 수 있었어요. 정확하게 제 감정을 잘 표현했고 완벽한 연기였습니다. 정말 만족합니다”


시사회가 끝난 후 한 관객이 그에게 와서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그는 오히려 자신이 고맙다고 해야 하는 상황에서 뿌듯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저의 이야기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했습니다. 영화를 보시는 모든 분들이 가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해요. ‘마이파더’가 주고자 하는 진정한 메시지가 잘 전달되기를 바랍니다”  




 

                                           <인터뷰 현장스케치>


인터뷰,글 / 신효정
http://topstargirl.com

사진,영상 / 박태양『太陽』<이박고 홈페이지, 싸이미니홈피>
               


Posted by 신효정

‘젠틀맨’, ‘꽃미남’, ‘댄디보이’


기존의 다니엘 헤니를 표현할 때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수식어들이다.

그도 그럴 것이 늘 깔끔하고 매너 있는 매력만점 킹카의 모습만을 보여주었던 그.

그런 그가 터프한 군인이 되어 돌아왔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해맑게 웃으며 또박또박 한국말로 악수를 청하는 다니엘 헤니.

예의 부드러운 그 미소는 변함 없었지만 그에게 풍기는 느낌이 전과는 사뭇 다르다.

눈빛이 좀 더 깊어지고 표정도 강인해졌다.



새 영화 ‘마이 파더’로 돌아온 다니엘 헤니는 더 이상 외모만 부각된 ‘모델’이 아닌 한층 성숙한 ‘배우’로 성장해 있었다.


“이번 영화를 통해 처음으로 ‘연기의 자유’를 느꼈어요. 로맨틱 코미디같이 기존에 했던 연기는 각본상의 어떤 울타리 같은 것이 있어서 그 안에서만 제한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느낌이었는데, 이번 작품은 규칙이나 울타리의 제약이 없어서 제가 하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감정을 표현할 수 있었죠”


황동혁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다니엘 헤니와 중견배우 김영철이 주연을 맡은 영화 ‘마이 파더’는 실화를 소재로 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로 아버지와 아들의 애틋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예요. 어릴 때 미국으로 입양되었던 남자가 친부모를 찾기 위해 주한 미군이 되죠”


전작들의 캐릭터에 비춰볼 때 군인으로 분한 다니엘 헤니의 모습은 쉽게 상상이 되지 않는다. 부드러운 젠틀맨의 이미지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터, 군인이라는 새로운 이미지의 역할을 맡아 부담스러운 점은 없었을까.


“기존의 이미지가 강한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저에게도 분명히 터프함이 내재돼 있어요. 그래서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잘 해낼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었죠. 군인이라는 역할은 늘 해보고 싶었어요. 제 아버지께서도 군인이시거든요. 그래서 아버지께 자료와 조언도 많이 구했고, 제가 드디어 그 역할을 맡는다는 것이 기대가 됐죠”



주한 미군이 되어 22년 만에 친부를 찾은 입양아 제임스(다니엘 헤니 분), 그러나 꿈에 그리던 아버지(김영철 분)는 사형수의 신분으로 그의 앞에 나타난다.


자신을 버렸고, 또 지금은 사형수가 돼버린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사랑, 용서와 아픔을 모두 표현해내야 하는 만큼 섬세한 연기력이 요구되는 쉽지 않은 역할이다.


“알려진 것처럼 제 어머니가 입양아셨죠. 사실, 어머니께서 어떻게 생각을 하실지 몰라 이 역할에 대한 부담이 더 컸던 것 같아요. 하지만 시나리오가 워낙 좋았고 또 어머니께 이런저런 조언을 구하고 상의를 하면서 오히려 역할에 더 몰입할 수 있었어요”


실제로 그의 연기에 대해 감독도 “다니엘 헤니가 아닌 제임스는 상상이 안 된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을 정도. 연기가 아닌 실제 그의 모습을 보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는 평이다.


헤니 스스로도 자신이 가진 에너지를 마음껏 펼칠 수 있었다며 만족스러움을 나타낸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어요. 제가 사진관 앞에서 유리를 부수고 절규하며 울부짖는 장면이었는데, 체력 소모도 많고 매우 격한 씬이라 과연 내가 가진 에너지로 이 장면을 소화해낼 수 있을지 걱정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주위의 다른 것들이 신경 쓰이지 않고 오직 배역에 몰입하고 있는 저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어요. 저에겐 감동적인 경험이었죠”



그가 이번 역할을 소화해 내기 까지는 함께 열연한 김영철의 도움이 컸다고 한다.


“김영철 선배님의 연기 지도가 큰 도움이 됐어요. 사실 연세가 있으신 대선배님들은 늘 어렵거든요. 제가 아직 존댓말에 서툴러서 실수를 하지는 않을지,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을지 걱정이 돼서요. 그런데 김영철 선배님이 연기하는 모습에 빠져들어서 저 역시도 연기가 아닌, 자연스러운 리액션이 나올 수 있었어요. 진실된 연기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분이죠. 이번 영화에서의 캐스팅도 완벽하지만, 저 개인적으로도 김영철 선배님이 이번 역할을 맡게 된 것이 감사해요”


그는 영화 ‘마이 파더’가 감동적인 휴먼드라마이긴 하지만 ‘무거움’을 지향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아주 재미있는 장면들도 많아요. 영화 전체가 슬프고 무거운 분위기라면 부담이 더 많이 됐겠죠. 하지만 곳곳에 재미있는 요소들이 많아 찍으면서도 정말 즐거웠어요. 또 그런 것들이 영화에서도 잘 표현이 돼서 더 애착이 가고요”



현재 배우로서 그의 역할은 제한적인 것이 사실이다. 다양한 연기를 보여주기엔 언어의 장벽은 장애로 작용한다. 언젠가 백퍼센트 한국어로 연기를 할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에 “생각은 늘 한다”며 멋쩍은 듯 웃는다.


“백퍼센트 한국어로 연기를 하게 될 날이 언젠가는 있겠죠. 하지만 그렇게 되려면 저의 어색한 대사를 만회하기 위해 다른 배우들이 연기에 더 신경을 써야 할테고, 그렇다면 그 분들에게 더 부담을 지우는 격이 되겠죠. 저는 연기에 있어서 언어는 그다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에겐 아직 서투른 한국말 보단 영어로 연기를 할 때 진실함이 전해진다고 보거든요. 그런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는 연기를 이번 영화를 통해 보여드리고 싶어요”


‘마치 놀이기구를 타듯 관객의 감정 폭을 이끌어 나가겠다’라고 당차게 말하는 다니엘 헤니의 모습에서 이번 영화에 대한 강한 자신감과 애정이 묻어났다.


올 가을, 관객들의 가슴을 적실 영화 ‘마이 파더’가 한층 성숙해진 ‘배우, 다니엘 헤니’로 거듭날 수 있는 전환점이 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인터뷰 현장스케치 및 네티즌에게 전하는 인사>


 


인터뷰/글: 신효정 http://topstargirl.com

사진/영상:『太陽』http://blog.daum.net/sunny2k



[화보]살인미소 다니엘 헤니 단독인터뷰 스케치





Posted by 신효정